사건 당일(봉황새 사건)인 1982년 2월 5일에는 날씨가 좋지 않던 탓에 성남 서울공항 관제탑 관계자 측은 절대 비행기를 띄우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군대는 무조건 비행기를 띄워야 한다며 관제탑의 지시를 무시하고 악천후에도 이륙을 강행했다. 안타깝게도 비행기는 제주 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한라산 개미등에 부딪혀 추락하게 됐다. 추락과 동시에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특전대원 47명과 공군 6명은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 악천후에도 비행을 강행한 이유에 대해 장 기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 때문이라고 밝힘. 하지만 사건 당시 국방부는 사고 유족들에게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 업무가 아닌 ‘대침투훈련’ 중 사망이라는 허위사실을 알렸다. 심지어 무려 53명의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에서는 9시간여만에 빠르게 사건현장을 수습해버렸다. 사고 지역을 목격한 사람은 포대 자루에 시신을 담아 한꺼번에 처리하거나 일부는 묻기도 했다는 등의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지금 들어도 충격적이고 끔찍한 참사지만 당시 해당 사건은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 사고 직후 유족들은 수차례에 걸쳐 수송기 추락 사고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사과와 조사를 요구했지만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하지 않았다. 해당 사건과 관련된 공식 자료는 전무할뿐더러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들의 자료 또한 특전사 쪽으로 모두 이관됐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조종사의 착각으로 빚어진 사고다”, “인명은 재천인데 어떻게 하겠냐”등 책임을 회피하기만 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의 무책임한 발언과 행동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가슴을 두 번 아프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