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tvN ‘신서유기 외전 - 강식당(이하 ‘강식당’)’은 평균 6.9%, 최고 7.8%(닐슨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신서유기’ 전 시리즈 최고 시청률이다. 처음 웹 예능으로 공개됐을 때만 해도 나영석 PD가 지나치게 여유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지만, 그는 성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증명했다. ‘꽃보다’ 시리즈, ‘신서유기’, ‘삼시세끼’, ‘알쓸신잡’, ‘윤식당’, 그리고 ‘신혼일기’와 ‘신서유기’의 외전 프로젝트까지, 나영석 PD의 성공은 더 이상 tvN 소속의 한 연출자라고만 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지금 tvN 안에서 그만의 거대한 프랜차이즈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2017년의 나영석 PD는 시대적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프로그램들을 연출하면서 자연스럽게 프로그램 숫자가 늘어났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삼시세끼’, ‘신서유기 4’, ‘꽃보다 청춘’ 등이 음식과 여행이라는 나영석 PD의 기본적인 테마를 보여준 것이라면,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은 그 위에 지식의 쉽고 다양한 전달을 더했고, 젊은 부부들의 생활상을 담은 ‘신혼일기’는 부부에 대한 관찰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와 젠더 역할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겼다. ‘윤식당’은 노배우 윤여정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됐다는 점만으로도 기존 예능 프로그램과는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또한 ‘강식당’은 ‘신서유기’의 출연자들을 일반인 손님들과 만나는 상황에 집어넣으면서 같은 출연자라도 소재와 연출 스타일에 따라 다른 재미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영석PD는 한 번에 파격적인 것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천천히 자신의 영토를 넓혀나간다.
현재 나영석 PD의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그가 얼마나 넓고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는지 보여준다. 강호동 같은 기존 예능인부터 윤여정처럼 예능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노년의 여성 배우가 있고, 규현이나 보이그룹 위너 같은 아이돌을 활용하거나 ‘알쓸신잡’에는 유시민과 김영하가 나오기도 한다. 또한 ‘신서유기’에서 규현과 함께 형들을 놀리곤 했던 안재현은 ‘신혼일기’에서 아내 구혜선을 “구님”이라고 부르는 다정한 남편의 캐릭터를 얻는 등 같은 출연자도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다양하고 깊은 캐릭터를 얻는다. 나영석 PD의 예능 프로그램은 어느새 음식, 여행, 연예계, 부부생활, 식당 운영, 인문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고, 많은 사람들은 그중 최소 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며, 그 출연자가 다른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까지 보게 된다. 프로그램마다 평균적으로 5%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사이, 그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다. 이제 나영석 PD의 예능만으로도 한 채널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그램의 숫자뿐만 아니라, 그가 다루는 프로그램들의 범위도 한 채널을 채울 수 있을 만큼 점점 넓어지고 있다.
나영석 PD의 영향력이 미치는 채널은 tvN뿐만이 아니다. OLIVE ‘섬총사’, JTBC ‘효리네 민박’, ‘뭉쳐야 뜬다’, ‘밤도깨비’ 등은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에 대한 다른 연출자나 채널의 답처럼 보인다. 이 프로그램들은 그처럼 여행과 음식 등을 다루고, 출연자들의 캐릭터와 관계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나영석 PD와는 다른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나영석 PD가 제시한 예능의 틀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TV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나영석 PD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기도 하다. 나영석 PD의 예능 프로그램은 이제 TV 예능 프로그램의 표준 중 하나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TV 바깥에서는 새로운 표준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6월, 나영석 PD는 칸 광고제에서 ‘지루함의 힘, 평범함이 놀라움이 될 수 있다(Power of Boredom: How Ordinary Can Be Extraordinary)’란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했다. TV 프로그램 위주의 제작자인 그가 이곳에서 한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TV가 아니라 네이버 V앱이나 넷플릭스 등을 찾는 이유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시골집 월세가 생각보다 비쌌던 것은 나처럼 무위도식하고 싶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조선일보’) 지금 한국에는 TV를 켜서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할 때까지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TV 바깥의 콘텐츠 제작자들은 V앱이나 딩고, 넷플릭스 등을 통해 보다 새로운 내용이나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내놓는다. 이를테면 나영석 PD가 ‘꽃보다 청춘 위너 편’을 제작할 때,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은 V앱을 통해 2년 이상 ‘Run BTS’라는 자체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 유튜브 기반의 ‘연애 플레이 리스트’는 SNS에서 ‘신혼일기’의 유명한 장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도 한다. 나영석 PD 역시 ‘신서유기’ 등을 인터넷에 사전 공개하면서 이런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TV 바깥에서는 이미 방송 시간은 물론 채널의 개념까지 모두 사라지고 있다.
CJ 콘텐츠편성전략팀 이기혁 팀장은 “‘나PD 예능’이라는 하나의 세계관이 일종의 브랜드가 된 것 같다”며 “트렌드를 빨리 캐치하고, 더 나아가 시대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나영석 PD는 점진적으로 TV 예능 프로그램을 바꾸면서 스스로 거대한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TV 바깥의 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지금, 나영석 PD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그것이 아마도 한국의 메인스트림 예능 TV 프로그램의 방향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