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조사한 15명의 학생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15명의 학생들 모두가 ‘한글’하면 떠올리는 것을 세종대왕, 애민 정신, 스물여덟 글자라고 대답하였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중 9명의 학생은 한글이 어떻게 발전하였고,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우리는 여태까지 한글의 창제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한글의 역사를 설명해준 국립 한국 박물관을 소개하려 한다.
국립 한글 박물관은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하며, 총 3층으로 이루어졌다. 1층에는 한글 교육 자료를 제공하는 한글도서관이 있고, 2층에는 상설 전시실(한글이 걸어온 길)이 있다. 3층에는 어린이들이 놀면서 한글을 학습할 수 있는 한글 놀이터와 한글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과 다문화 주민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한글배움터가 있다. 2층에 있는 상설 전시실이 바로 한글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전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3부로 나뉘어 구성되었는데, 1부는 한글의 창제 과정, 2부는 한글의 사용 및 기계화, 3부는 한글의 근대&현대화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각 부의 핵심 설명이며, 박물관을 견학하기 전에 읽고 가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1부: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1부는 앞서 언급했듯이 한글의 창제 과정을 다룬 장소이다. 1443년, 세종 대왕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훈민정음은 세종 대왕이 백성들이 문자를 몰라 일상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겪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만든 애민 정신의 결과물이다.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인 상형, 가획, 이체 등은 현대 언어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부족한 점이 없으며, 당시의 성리학적 세계관인 하늘, 땅, 사람의 의미를 담고 있어 철학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2부: 쉽게 익혀서 편히 쓰니
한글은 교육, 예술과 같은 일상생활에 점차 스며들었다. 조선 후기 때는 한글이 일상적인 문자로 자리 잡았으며, 19세기부터 들여온 근대식 인쇄 기술 덕분에 기존에 사용했던 목판 인쇄 방식 대신 납 활자 인쇄 방식을 쓸 수 있었다. 납 활자 인쇄는 낱개의 글자를 만들어 놓으면 여러 조합이 가능하여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종류의 책을 찍어내기에 적절하였다. 이 방식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이 발간되면서 확산되었다.
3부: 세상에 널리 퍼져 나아가니
1894년, 한글은 조선의 공식 문자로 선언되었다. 1907년에는 한글을 연구하는 국립 기관인 국문 연구소가 설립되어 우리말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는데, 3년 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한글 연구는 물거품이 되었다. 그런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국어학자들과 국어 단체들은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대표적인 예로 주시경이 집필한 우리말 문법 연구서인 조선어 문법, 조선어학회가 제정하여 공표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있다. 이후 한글은 현대화를 거치며 단순한 의사소통의 기능뿐만 아니라 예술, 정보화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면 이 기사에 제시된 정보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의 자료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의 창제 과정, 발전, 그리고 현대화까지 ‘한글의 역사’를 총정리한 국립 한글 박물관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자인 한글을 만나는 것을 추천한다.